“아빠, 또 놀러 오세요.”
잠이 덜 깬 어린 딸이 출근하는 아빠에게 말한다. 국내 제약회사 CF의 한 장면인데, 반복되는 야근으로 육아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아빠들의 서글픈 현실을 담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반대 사례가 있다. 어떤 회사 직원들은 월요일마다 가족과 여유 있는 아침 식사를 즐긴 뒤, 자녀의 등원을 함께 한다. 주말여행이나, 일요일 심야 영화도 부담 없다. ‘주 35시간 근무제’ 등장 후의 일이다.
북유럽 국가 이야기 같지만,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 구성원들의 일상이다. 이처럼 절대 근로시간 단축은 몇 시간 ‘덜’ 일한다는 장점 외에, 단순 계산으로는 산출하기 어려운 가치를 내포한다.
◇월요일 오전의 여유를 선물 받는다면
올해 대기업인 신세계그룹의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이 화제였다. 국내 10대 기업 중 하나가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공표함에 따라, 타 기업들도 뒤따라 유사 제도를 도입할 거란 기대감 때문일까.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용어도 최근 많은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대기업보다 앞서 단축 근무제를 도입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있었다. 여기어때를 비롯해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소형가구 이사 서비스 짐카, 셰어하우스 우주, 반려동물 장례서비스 21그램 등은 근로시간 단축 문화를 안착시켰다. 주당 35시간 근무는 OECD 회원국 중 노동 선진국으로 꼽히는 프랑스가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도입 기업이 극히 드물어, 흔히 ‘0.1%의 복지’로 불린다.
여기어때 구성원들은 2017년 4월부터 매주 35시간 일하고 있다. 통상 직장인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해 주 40시간을 일한다. 여기어때는 매주 월요일 오전 근무를 없애고, 오후 1시에 출근한다. 그리고 화요일~금요일은 '9 to 6'를 유지하되, 점심시간은 30분을 늘려 90분으로 정했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직원들의 임금은 삭감하지 않고 유지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서비스를 만들자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은 최상의 근무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경영진의 의지였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서비스를 만들자
개인과 기업 성과는 일하는 절대량이 아니라, 목표 의식과 동기부여에 달렸다. 심 대표는 구성원이 5시간을 덜 일하는 대신, 그 시간을 가족 등 사랑하는 이와 보내거나, 자기 계발에 활용하면서 행복한 삶을 위해 쓰기를 원했다.
주 35시간 근무제와 함께 여기어때는 최상의 근무 환경을 조성했다. 2017년 사옥을 강남 삼성동으로 옮기며 구내식당과 카페테리아를 만들었다. 전문 셰프가 있는 구내식당에서 균형 잡힌 식단을 하루 세끼 무상 제공하고, 카페테리아에서 가성비 높은 커피와 음료를 즐기도록 했다. 식사 메뉴와 식비 고민을 해결하고, 건강을 챙기겠다는 배려다. 원하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도록 도서 구매 비용을 무제한 지원한다. 매해 50만 원 상당의 숙박·액티비티 포인트도 지급한다. 게다가 직원들은 회사와 계약된 근처 피트니스 센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금요일에 눈치 보며 일찍 퇴근할래요, 월요일 오전에 여유 있게 쉴래요
왜 월요일 오후 출근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단축 근무 제도를 앞서 도입한 기업 중에는, 주 5일을 한 시간씩 늦게 출근하는 곳도, 금요일에 일찍 퇴근시키는 회사도 있었다.
경영진은 직장인의 고질적인 ‘월요병’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하루 한 시간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주말과 이어진 월요일 오전이나 금요일 오후를 비워 주말의 여유를 늘리는 목적이다. 월요일 오전에 쉬는 게 좋을지, 금요일 오후가 좋을지는 구성원에게 직접 물었다.
“월요일 오후 1시에 출근할래요, 금요일에 3시 퇴근할래요?”
결과는 50:50으로 팽팽했다. 결정권은 경영진에게 돌아왔다. 월요일 오전과 금요일 오후의 성향을 비교하니 실마리가 보였다. 월요일 오전은 주말과 한 주의 시작이 이어져,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다. 반면, 금요일 오후는 주말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시간이다. 제도 도입 취지가 구성원 ‘휴식’과 ‘업무 집중도 향상’이란 점에 주목했다.
구성원들의 소통 채널인 올핸즈미팅(All-hands meeting)을 통해 임직원 간 자유로운 의견이 오갔다. 그리고 한 차례 더 진행된 설문조사. 그 결과 ‘월요일 오후 출근’을 지지하는 의견이 경미한 차이로 많았다. 월요일 오전 시간을 비우기로 최종 결정됐다.
“월요일 오전은 주말의 연장, 즉 에너지를 얻는 재충전의 시간이라면 금요일은 에너지를 쓰는 시간이에요. 금요일에 업무가 다 끝나지 않으면 동료나 상사 눈치를 보느라 일찍 퇴근 못 할 것이라는 의견도 설득력 있었죠.”
- 조현기 교육문화팀장 -
◇적게 일하면서 최대 성과를 내는 방법
적게 일하면서 성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방법. 회사가 고민할 문제였다.
먼저, 임직원 모두의 인식 변화에 주력했다. 명확한 목표 의식과 동기부여, 정확한 업무지시가 조직문화에 조성되도록 했다. 둘째로 경영진의 의지가 필요했다. 교육문화팀은 ‘젊은이가 일하는 방법 ‘9·1·6’ 캠페인을 전개했다. 9시 오전 업무 시작, 1시 오후 업무 시작 그리고 6시 퇴근을 지켜 주어진 시간 안에 밀도 있게 일하자는 거다. 임원부터 솔선수범해 월요일 1시 출근과 식사시간 90분을 지키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직급을 없애고 영어 이름으로 호칭을 통일해 수평 조직문화를 구축했다. 이어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협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실제 업무에 투입 가능한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회사 목표나 개인의 업무성과가 달라지는 건 아니에요. 한층 집중해서 업무를 완료하고 정시 퇴근하는 문화가 정착됐죠.“
- 이선용 위드이노베이션 CHO, 인재경영실 총괄 -
◇매주 5시간의 선물, 그 이상의 의미
제도 도입 20개월. 회사의 실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제도 도입 첫해인 2017년은 520억 원의 매출과 60억 원의 영업이익(온라인 사업 기준)을 거뒀다. 전년 영업손실(-141억 원)에 비해 크게 개선된 수치다. 여기어때가 시장 진출 2년 만에 얻은 성적표다. 절대 근무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타파했다. 매출 외 거래액, 사용자 수 등 주요 수치도 전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회사 성장과 근로시간 단축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다양한 맞춤 복지와 선진 근무 환경이 외부 채널을 통해 소개되면서 기업 인지도 및 호감도가 향상되고, 인재 확보에 힘이 실렸다. 평균 입사 경쟁률은 지난해 동기간(1~7월)보다 4배나 올랐다. 개발/기획 직군의 경우 6배 이상 치솟았다. 일부 직무는 한 명을 채용하는 자리에 1,3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여기어때의 대규모 채용 소식은 ‘VJ특공대’, ‘생방송 오늘아침’, ‘SBS스페셜:취준진담’, '채널A 잡토리’ 등에 소개됐다.
“이 회사 직원들은 다들 표정이 좋네요?”
밝은 분위기에 회사를 방문한 사람들이 종종 놀라곤 한다. 정량적 지표를 따지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5시간을 선물 받는다는 것은 구성원 삶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아침마다 유치원에 딸을 떼어놓고 오는 게 마음이 무거웠는데, 월요일에는 여유롭게 딸과 시간을 보내고 등원시키니 아빠랑 같이 있겠다며 보채지 않아요. 가장 소중한 시간이죠.“
- 서비스 개발실 R(입사 2년 차) –
“은행이나 병원 등 근무시간 중 가능한 사적 업무가 있는데, 월요일 오전에 눈치 안 보고 처리할 수 있어 좋아요. 점심시간도 1시간 30분이라 좀 더 여유롭게 쉴 수 있어요. 대신, 주어진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는 문화가 조성됐죠. 동료들이 오후 1시만 되면 칼같이 자리로 돌아가서, 시끌벅적하던 카페테리아가 갑자기 조용해져요.”
- 커뮤니케이션실 D(입사 3년 차) -
임직원 대상으로 ‘복지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주 35시간 근무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1위(98.2점)를 차지했다. 자기 계발이나 가정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에 대한 고무적인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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